[뉴스의 맥] Fed 못 믿는 월가…'긴축 발작' 없이 인플레 막을까

입력 2021-03-30 17:21   수정 2021-03-31 00:12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인플레이션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현재 미국의 물가상승률 추이를 보면 작년 3월 코로나19가 본격화하면서 소비자물가지수, 근원물가지수 모두 급격히 하락한 뒤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은 인플레 압력의 뚜렷한 예후는 보이지 않는다.

반면, 월가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에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미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포트폴리오 매니저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코로나19를 제치고 ‘인플레이션’이 1위로 꼽혔고, 정책금리 인상에 따른 급격한 경기 위축을 일컫는 ‘긴축 발작(taper tantrum)’이 그 뒤를 이었다.

펀드 매니저들의 이런 우려는 미 국채 금리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그림(위)>에서 보듯 작년 3월 코로나 충격으로 한때 0.5% 초반대까지 하락했던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미국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된 12월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해 3월 중반 1.74%까지 급등했다.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한 이유는 10년물 기대인플레이션(BEI·Break-Even Inflation)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BEI는 10년 만기 국채 명목금리와 동일 만기 물가연동부 국채가 의미하는 실질금리의 차이로, 향후 기대인플레이션 값이라고 보면 된다. 작년 12월 초부터 지금까지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가 0.7% 정도 상승했는데 같은 기간 BEI는 0.47% 정도 상승했다. 따라서 최근 미 국채 금리 급등의 약 70%는 기대인플레이션 급등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빠른 경제회복…Fed 유동성 회수 능력 의문
그렇다면 이렇게 월가가 인플레이션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미국에서 백신 접종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경기 회복이 ‘날카로운 V자 회복’을 보일 가능성이 크고, 이로 인해 경기가 과열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경기 회복이 빠른 것은 물론 좋은 뉴스다. 하지만 그럴 경우 작년 3월 이후 풀린 막대한 유동성을 미 중앙은행(Fed)이 얼마만큼 시장에 충격 없이 효과적으로 회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일고 있다.

<그림(아래)>에서 보듯 작년 3월 이후 Fed는 정책금리를 제로금리로 낮춘 후 대대적인 양적·질적 완화를 통해 지금까지 4조달러 가까이를 시장에 풀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14년까지 세 차례의 양적완화를 통해 공급한 3조달러보다 큰 규모다. Fed가 이렇게 초유의 유동성 공급을 한 이유는 코로나 사태가 근본적으로 록다운으로 인한 ‘현금 부족’ 위기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조 바이든 정부가 작년 말 9000억달러에 이어 올해 1조9000억달러에 이르는 재정부양책을 집행하고, 더불어 향후 4조달러의 인프라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보니 유동성 규모가 추가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플레이션 우려 과도…나쁜 인플레 안 올 것
지하실에 불이 났을 때 소방차는 일단 불을 꺼야 하니 앞뒤 계산 없이 물을 퍼붓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생각보다 불이 일찍 진화됐다. 백신이 생각보다 빨리 개발된 것이다. 거기다 3월 현재 미국의 백신 접종률은 인구의 14.13%로 주요국 중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그렇다 보니 1월 초 하루 30만 명에 이르던 확진자 수는 현재 6만 명대로 급감했다. 이에 따라 Fed는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6.5%로 상향 조정했고, 골드만삭스는 7% 정도로 전망하고 있다. 급한 불을 잡고 보니 이제 지하실에 가득 찬 물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고민거리가 된 것이다. 너무 일찍 유동성을 회수하면 긴축발작이 날까 두렵고 그렇다고 놔두면 인플레이션이 걱정되는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 펀드 매니저들이 향후 위험 요인으로 꼽은 인플레이션과 긴축발작은 사실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동일한 사안에 대한 우려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시장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과연 소방수인 Fed가 불도 완전히 진화하고 고인 물도 효과적으로 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다. 즉, Fed의 능력에 대한 신뢰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일단 Fed를 비롯해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과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지난 23일 하원 청문회에서 “올해 미국 경제가 강하게 반등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겠지만 그 현상은 일시적이며 특별히 심각하거나 지속적이진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과도한 물가상승이 현실화되더라도 대처할 수단이 있다고 자신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역시 궤를 같이하고 있다.

실제 과도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확률은 높지 않다. 과거 악성인플레이션은 경기과열보다는 경기가 외생적 충격으로 급격히 추락한 경우에 나타났다. 1970년 말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발생한 스태그플레이션을 보자. 당시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무리한 재정부양책과 과도한 통화팽창정책의 후유증에 두 차례의 오일쇼크란 초유의 충격이 겹치면서 발생했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먼저 2008년 이후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지속된 저물가가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란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이번엔 다르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전문가 중 대표적인 인물이 빌 더들리 전 뉴욕연방은행 총재,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그리고 소로스나 짐 로저스에 비견할 만한 전설적 헤지펀드 투자자인 튜더인베스트먼트의 폴 존스 등이다.
中의 내수시장 전환, 장기적 물가상승 초래
이들의 우려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 차례의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저물가가 유지된 결정적 이유는 풀린 통화의 대부분이 은행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는 기본적으로 은행들의 과도한 부실 대출로 인해 보유하게 된 불량자산의 급증으로 대차대조표가 훼손된 데 원인이 있는 만큼 팽창된 대부분의 통화가 은행권에 머무는 ‘현금 비축’ 현상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실제 기업이나 가계 등 투자나 소비를 견인하는 실물경제 부문으로 내려가는 통화량이 많지 않아 인플레 압력이 높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위기는 은행의 위기가 아닌 만큼 실물경제에 투입되는 유동성이 상대적으로 많고, 또 재난지원금을 비롯한 직접 지원 형태가 큰 만큼 인플레 압력이 높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림(아래)>에서 보듯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본원통화 증가에도 불구하고 시중에 풀린 유동성 지표인 M2에는 추세적 변화가 관찰되지 않는 반면, 작년 이후에는 추세를 이탈해 급격히 증가했다.

이와 더불어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플레 압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2000년 이후 지속된 미국의 저물가 유지에는 중국의 역할이 컸다. 중국은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저렴한 공산품을 미국에 수출했고 이로 인해 미국은 저물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즉 미국의 통화팽창으로 인한 인플레 압력을 중국의 디플레 수출이 막아준 것이다. 더불어 중국이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통해 벌어들인 달러를 미 국채에 다시 ‘파킹(parking)’하는 ‘과잉저축(savings glut)’으로 미 국채의 시장금리를 낮추고 달러의 가치 하락을 방지해 왔다. 하지만 중국이 점차 수출 확대 전략에서 내수시장으로 성장동력을 돌리고 있는 만큼 향후 중국이 글로벌 시장의 수요처로 전환되는 ‘글로벌 리밸런싱’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중국의 디플레 수출이 감소해 미국에서 인플레 압력이 커지고 달러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

종합하면 과거 1970년대와 같은 악성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묵시론적’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3~4%대의 인플레이션이 수년간 지속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인데 단순히 기우라고 매도할 수는 없지만 이마저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물론 Fed도 인정하듯 올해와 내년에는 2000년 이후 볼 수 없었던 인플레 압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 것이 사실이지만 이는 작년 과도하게 위축됐던 소비가 분출하면서 나오는 경기과열의 부수적 현상에 불과하다. 다만 Fed가 얼마만큼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타격을 주지 않고 적기에 적정한 수준으로 유동성 흡수를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월가에서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할 것으로 보이며 이런 우려가 인플레이션 논쟁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美 인플레이션 우려 배경은
공급이 경기회복 못 따라가…美 국채 금리 2%땐 주가 조정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는 대표적인 전문가는 뉴욕연방은행 총재 및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부의장을 지낸 빌 더들리다. 그는 ‘너무 빠른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다섯 가지 이유’란 제목으로 블룸버그에 기고했다.

첫 번째 이유로는 기저 효과로 작년 3월과 4월 근원물가 수준이 0.5% 하락한 만큼 올 3월과 4월 물가는 연(年)기준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들었다. 둘째, 올 하반기에는 코로나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호텔이나 항공산업의 수요가 회복되면서 물가를 견인할 것으로 예측했다. 셋째,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에 투자와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인해 공급이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외식 수요가 급격히 회복돼도 레스토랑이 다시 개업하려면 건물을 임차하고, 인테리어를 새로 하고, 집기를 장만한 후 종업원을 고용해야 한다. 이를 모두 준비하는 데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물가 및 임금상승이 불가피하다. 넷째, 미 중앙은행(Fed)이 인플레이션을 보다 용인하는 쪽으로 장기통화정책을 수정했다. 과거에는 Fed가 매년 암묵적 목표인 2%의 인플레이션을 추구했다면 이젠 장기적으로 2%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선회했기 때문에 작년의 저물가를 보충하기 위해서는 2%를 훨씬 웃돌더라도 이를 용인하는 통화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과거와 달리 미 정부와 의회가 재정적자에 너무 둔감한 만큼 보다 장기적이고 과도한 재정부양책을 펼칠 것이며, 이는 예상보다 높은 물가상승을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또 한 가지 인플레이션 논쟁에서 주목할 점은 월가의 인플레이션 우려 기저에는 2009년 2월 최저점 이후 무려 8배 이상 급등한 미국의 주가 레벨에 대한 부담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월가에서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 2%를 주요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즉, 시장금리가 2%를 넘어서면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보유 주식을 매각하고 채권으로 갈아탈 가능성이 커지는 ‘자산대체효과’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럴 경우 주가 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에 대한 우려가 인플레이션 논쟁으로 승화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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